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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9 09:15

간호사들 메스 잡았다


조선일보

기사입력 2008-12-09 03:03 |최종수정2008-12-09 08:59 기사원문보기



종합병원 500여명… 젊은 의사들, 흉부외과 등 기피

대법원 판례 "불법 행위" 의료계 "불가피한 상황"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흉부외과 수술실. 이곳 수술대에서 대학교수와 함께 마주 보고 서서 가슴을 째고 꿰매는 의료진 K(36)씨는 간호사 신분이다. 그는 메스를 들고 심장 수술을 거들면서 수술 부위를 드러내기 위해 갈비뼈 사이를 열고 닫는 일을 한다. 예전 같으면 흉부외과 레지던트(전공의), 즉 의사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병원 흉부외과에 젊은 의사가 지원하지 않으면서 의사 일을 간호사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K씨는 "야간에 응급환자가 생기면 불려 나와 수술에 참여한다"며 "교수님 허락을 받고 응급실 환자에게 간단한 처치도 한다"고 말했다. K씨의 '반(半) 흉부외과 의사' 경력도 벌써 5년째다. 이 병원 흉부외과에는 K씨처럼 의사 일을 하는 간호사가 4명이나 있다. 병원에서는 이들을 '피에이'(PA·physician assistant·의사 보조)라고 부른다. 환자들 앞에서의 호칭은 '○○○ 선생님'이다.

이처럼 의료법 규정상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간호사 즉, '피에이(PA)'가 국립대병원 등 전국 대형종합병원에서 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학계에 따르면 흉부외과에 320여 명, 외과 120여 명, 산부인과 100여 명, 신경외과 40여 명 등으로 추산된다. 주로 젊은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한 외과 계열 진료과다. 대부분 대학병원 간호사로 있다가 '피에이'로 근무하는 경우로, 이들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뒷받침은 없지만 이 수는 최근 급속히 늘고 있다.

A대학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거드는 '피에이' N(여·27)씨는 응급구조사 출신이다. 병원이 응급의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응급구조사를 처음부터 흉부외과 '피에이'로 쓸 목적으로 뽑은 것이다. N씨는 "수술 부위 소독이나 봉합술 등 레지던트들이 하던 일을 교육받고 수술실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병원 규모나 경영상 의사를 많이 고용할 수 없는 중·소병원이나 개원의원에서는 수술실 보조의 역할로 이른바 '오더리'(Orderee· 의사의 지시를 받는 남자 간호 보조원을 통칭하는 말)들이 대거 활동하고 있다. 이들도 역시 메스와 가위를 들고 의사의 수술을 거든다. 전국적으로 약 4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경기도 성남시 100병상 규모의 정형외과 병원 S원장은 "주로 남자 간호조무사 출신들이 의사 어깨 너머로 수술 기술을 익힌 후 수술에 참여하게 된다"며 "그중에는 군대 위생병 출신의 일반인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방식의 수술 보조 관행은 병원 직원 채용 공고를 낼 때도 '수술실 오더리 ○명 모집'이라고 내걸 정도로 뿌리가 깊다. 이들의 월급은 200만~300만원 수준이며, 개중에 손재주가 좋기로 소문나서 월 500만~600만원을 받고 병원에 스카우트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척추 전문 병원 중에는 의사가 수술실로 내려오기 전에 '오더리'가 수술 부위를 먼저 째고 척추뼈가 드러나도록 근육을 젖혀 놓으면 그때서야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것이 한 명의 의사가 하루에 척추 수술 5~6건을 할 수 있는 비결(?)로 알려져 있다.

피부과·성형외과에는 일명 '철가방 아저씨'로 불리는 수술 보조들이 있다. 이들 의원에서 모발이식 수술이 잡히면 수술 기구 가방을 들고 와서 의사 대신 머리카락을 심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의사가 아닌 사람들의 이 같은 의료행위는 엄연히 불법이다. 의료전문 김선욱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의사가 감독을 했다고 해도 의사 아닌 사람이 환자 몸에 메스를 대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정받았다"며 "현재의 의료계 관행은 모두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외과 윤여규 교수는 "젊은 의사 인력이 없는 외과 현실에서 '피에이'는 이제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미국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준(準)의료인은 의사들의 단순 작업을 대신할 수 있게 양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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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8 21:18

죽음 성찰해야 의미있는 삶 산다

 

천주의 성요한 수도회 ''죽음과의 만남-누구나 가야할 길'' 세미나


 
▲ 천주의 성요한 수도회가 10월 28일 광주시 5ㆍ18기념문화센터에서 개최한 '죽음과의 만남'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주제 발표를 듣고 있다.
 

천주의 성요한 수도회(관구장 장현권 수사)는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아 10월 28일 광주시 5ㆍ18기념문화센터에서 '죽음과의 만남-누구나 가야할 길'이라는 주제로 기념 세미나를 열고 다양한 관점에서 죽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현권 수사는 인사말에서 "숨이 멎은 상태가 죽음이라는 기준은 인간이 정한 기호일 뿐"이라며 "행복과 불행이 우리 마음에 달린 것처럼 죽음과 살아있음에 대한 기준 또한 우리 인식과 믿음 안에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세미나 주요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죽음의 인류학적 이해(김경학 교수, 전남대 인류학과)
 인류학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죽음 관련 주제는 죽음에 대처하는 사람들과, 죽음을 처리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의례적 측면들이다. 죽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와 살아있는 자의 세계이다. 꿈에 등장하는 죽은 자의 이미지, 죽음으로 인해 느슨해진 공동체 결속과 살아있는 자의 고통, 죽음으로 인한 삶의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의 세계에 관여한다는 인식 등 죽음이 문제가 됐던 것은 항상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에서였다.

 살아있는 자들은 다양한 방식의 죽음의례를 통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두려움과 상처, 상실 등 문제를 순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죽음의례의 바탕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전이적 단계를 거쳐 다른 세계로 서서히 옮겨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인류학자들은 전이적 과정에 등장하는 의례적 관습과 믿음의 문화적 맥락을 규명하고, 그 다양성 및 상대성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처럼 인류학자들은 죽음을 단순한 의과학의 영역이 아닌 종교적 영역으로 간주했다. 다른 문화부문에 비해 종교적 영역의 변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그러나 사회마다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죽음의례와 관련된 관습과 믿음 역시 지속적으로 변화해왔다.

▨죽음에 대한 의료 윤리적 이해-안락사를 중심으로(정미경 가정의학전문의, 전진상클리닉)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사회가 안락사의 자발성을 살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자발성은 강제, 압력, 과도한 권유, 심리적ㆍ정서적 조종 등으로부터 자유를 의미한다. 비록 안락사가 복잡한 절차를 거쳐 시행된다 하더라도 안락사를 요청하도록 교묘히 조종당하는 것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늙고 병들어 타인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죽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죽어야 할 의무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환자가 고통 없이 죽고 싶어하는데도 그들을 계속 고통 속에 두는 것은 비인간적이기에 안락사가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의 전제는 안락사만이 그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신 완화의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춘다면 안락사가 아니어도 극심한 고통은 줄일 수 있다. 의사와 간호사에 대한 완화의학 교육이 필요하다.

 환자들이 진심으로 안락사를 요구하는 일은 흔치 않다.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 대부분은 실제로 '도움을 청하는 울부짖음'(crying for help)을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안락사를 합법화하기에는 우리 사회에 잠재적 인종차별,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공리주의적 무감각, 인간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너무 뚜렷하다. 자발적 안락사일지라도 안락사를 금지하는 법이 유지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이들은 안락사가 허용되도 남용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이토록 위험한 실험을 시도해서는 안된다.

▨죽음에 대한 인간학적 성찰(신승환 교수, 가톨릭대 철학과)
 인간은 영원한 삶, 죽음 없는 삶을 원하지만 그것은 공허하기 그지없는 생각일 뿐이다. 삶의 맥락을 상실한 채 끝없이 이어지는 생물적 생명이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며, 공허에 직면하게 하는 고통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삶을 절대화하고 죽음을 피해야 할 악의 원천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다가올 죽음에 대한 이해가 우리 삶을 결정한다면 의미있는 삶을 위해 우리는 다시금 진지하게 죽음을 앞당겨 생각하고, 죽음을 성찰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성찰과 이해가 없다면 삶의 의미는 그만큼 축소될 것이다. 죽음에의 거부나 은폐, 왜곡은 삶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삶과 죽음은 인간 삶에 결정적으로 연결된 한 축의 두 원점이다.

 죽음은 인간 인식 범위를 벗어나 있다. 경험의 영역을 넘어서며, 검증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한 성찰은 과학의 영역이나 인식의 차원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 영역에서 주어진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묻는 물음의 근거가 된다. 죽음에의 태도에 따라 현재 삶에 대한 이해는 물론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죽음이란 결국 인간을 무로 돌려버리거나 아니면 또 다른 삶으로 초대하는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수용의 태도를 촉구하는 인간 존재의 가장 궁극적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정리=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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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3 23:47

amnesty international ad.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한국지부의 '1만 회원 시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계시민으로서 지구촌의 인권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활동해갈 750명의 회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을 향한 희망 운동, 국제앰네스티에 친구추천을 통해 회원님의 힘을 더해주세요. 

1960년 당시포르투갈의 두 명의 청년은 ‘자유를 위해 건배’ 했다는 이유로 구금되었습니다  영국의  변호사  피터 베넨슨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두 청년의  사연을  접하고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기고문을 신문에 내서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함을 밝혔습니다.

 이러한 국제앰네스티의  시작점은 바로 세계인권선언 19, 20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반세기 동안 국제앰네스티는 모든 사람이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모든  인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활동해 왔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의  1948년  유엔에서  세계지도자들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전  세계적인 약속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약속으로 남아있습니다.

 지난  여름  촛불시위에서  있었던  과잉진압을  보면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제앰네스티의  조사와 활동은 이 문제가 대한민국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숨쉬고 있는 지구 공동체의 문제임을 전세계에 알리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가까운 중국티벳미얀마(버마)에서부터 동유럽 벨라루스에 이르기까지,지구 공동체에는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부에 시민의  권리보호를  스스로  요구하다  폭력과  죽음에 노출된 사람들이 있습니다시민단체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차단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의  첫  시작이  함께  동참했던  시민들의  힘으로 가능했었던 것처럼 지난  반세기  동안  국경을  뛰어넘는  이런  인권활동들은  언제나 ‘그들’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10월 31일까지 전세계 160개국의 220만명의 회원과 함께

세상을 밝게 비추는 촛불이 될 회원님의 추천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 김희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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